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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박해성의 여의대교] 분열에 기대는 정치, 왜?
    • 작성일2023/10/12 16:10
    • 조회 125

    대한민국호 선장 윤석열은 '리더'인가, '보스'인가?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에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은 교육 현장과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위치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일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교권 회복'에 힘을 싣는 모양새입니다. 7월 26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 초중등교육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등의 법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진보 교육감'들 주도로 도입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정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교육청이 처음 공포했습니다. 이후 약 10년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등에서 잇따라 제정됩니다. 교육청별로 세부적인 차이는 좀 있습니다만,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에서 존중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한 여권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교권'이 침해당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교사와 학생의 인권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가치일까요? 정부·여당은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을 두고 일부 교육감들의 진보성향과 학생인권조례 탓을 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올해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0회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은 첫 국무회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회의를 개최하며 14분에 걸친 모두발언을 했는데요, '이념'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여섯 차례 언급합니다.

    ① 과거 포퓰리즘과 이념에 사로잡힌 반시장적 경제정책, ② 이념적,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 ③ 이념적, 정치적 (원전) 정책, ④ 정치 이념에 매몰된 국가 정책, ⑤ 획일화된 교육, 정치 이념적 교육, ⑥ 이념적, 반시장적 정책을 정상화.

    모두 전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 동원된 표현입니다. '문재인 정부 = 이념적 = 반시장적' vs. '윤석열 정부 = 정상화 = 자유민주주의'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편과 남의 편을 나누고, 내 편은 옳고 남의 편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편 가르기입니다. 여기서 대통령은 '이념'이라는 매우 편리한 딱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딱지 붙이기는 경제, 부동산, 탈원전, 교육 등 대표적인 정책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이념적 정치방역'이라고 규정하거나(5.11, 윤 대통령,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고(6.28, 윤 대통령, 한국자유총연맹 연설), '가짜 독립유공자 용납 불가' 운운하면서 친북 논란 공적 재평가를 시사하며(7.3, 박민식 국가보훈처 장관 SNS 글),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은 '공산당 신문·방송'으로 규정합니다(8.1,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출근길 질의응답).

    분열적인 수사 없이는 현 정부 정책 기조의 정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집권 세력의 얄팍한 타산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양산된 불신과 불화를 치유하고 통합과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클지 걱정스럽습니다.

    지난해 3월 9일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48.56%, 이재명 후보가 47.83%를 얻어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0.73%p포인트에 불과했습니다. 역대 대선 중 최소 득표율 격차였습니다. 선거 이틀 전에 한국갤럽이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이념 성향은 보수 28.8%, 중도 31.1%, 진보 26.0%의 분포를 보였는데요, 박빙의 대선 결과를 중도층이 갈랐다고 볼 수 있는 비율입니다.

    최근 두 달간 정당 지지도를 분석해보면 국민의힘은 33~35%, 더불어민주당은 29~34%, 무당층은 27~32% 수준입니다(한국갤럽 자체 조사.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대체로 3:3:3의 유권자 지형이 형성돼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 2년의 성적표를 받게 될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중도층의 투표 참여 여부와 표심이 승패를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집권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을 보통 '중간선거'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래서 보통 '국정 안정·지원 vs. 정권 견제·심판'의 캠페인 구도가 수립됩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는 '코로나 극복'을 어젠다로 내세운 여당과 '조국, 부동산, 내로남불' 이슈로 공세에 나선 야당이 맞붙어 집권세력의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총선이 약 8개월 남은 지금 시점에서 여야는 '강 대 강' 대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권으로서는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할 만한 명분이 부족하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잘못한다'라는 비판 여론을 결집할 만한 킬러 이슈가 마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여야 모두 핵심 지지층의 결집은 공고한 편이지만 중도·무당층을 움직일만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 28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의 59%는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당층 역시 '잘못하고 있다'라는 응답 비율이 56%에 이릅니다. 만약 이대로 선거를 치른다면 집권 세력은 중도·무당층으로부터 불신임 카드를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이념을 내세워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여권의 속내가 짐작이 갑니다. 비판을 수용하는 포용적인 국정 운영으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보다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 진보층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보-보수 진영 간 혐오는 물론, 중도·무당층의 정치 외면 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당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도, 교사의 사망 사건과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도 교육감의 이념을 거론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정치적 선택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할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는 분열에 기대는 비겁한 정치, 자기 진영 뒤로 숨는 무능한 정치를 또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거리 정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언론인 출신의 문화평론가 홍사중 씨의 <리더와 보스>라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제 방식대로 요약해보겠습니다. 리더는 '우리'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려준다. 희망을 주며 지지자를 만든다. 반면 보스는 '나’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몰고 간다.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보며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겁을 주며 부하를 만든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호의 선장, 윤석열 대통령은 리더입니까? 보스입니까?

     

     

    https://news.naver.com/hotissue/main?sid1=163&cid=20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