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여의대교] 프레시안 칼럼, 네 번째 이야기
- 작성일2023/07/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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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정하는 선거 캠페인, '스마트'해질 수 없나
[박해성의 여의대교] 정치와 선거는 왜 'AI 갈라파고스'인가?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 기사입력 2023.05.25. 06:14:10
미국의 초대형 서점 체인 업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본사 컴퓨터가 인공지능(AI)으로 각 지점이 진열할 책의 종류와 위치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데이터를 모읍니다. 고객 구매 및 온라인 검색 내역, 서평, 소셜 미디어 키워드, 업계 동향 등 광범위한 분야의 데이터입니다.
다음 단계는 빅데이터 분석입니다.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또는 자연어 처리와 같은 AI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패턴과 추세를 발견합니다. 특정 계층에 어떤 책이 인기가 있을지, 시장에서는 어떤 책이 주목받고 있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적합한 책을 추천하고 매장 레이아웃을 최적화할 순서입니다. AI 시스템이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아둘 책을 골라냅니다. 더 많은 고객이 매장을 찾고 책을 살 수 있도록 판매대와 책을 배치합니다.
이후에도 AI 시스템은 계속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고 결정 사항을 조정합니다. 고객 선호와 업계 동향 등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해 AI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개선해 나갑니다.
반스앤노블 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마존, 넷플릭스, 스타벅스, 월마트, 구글, 코카콜라 등 효율성을 개선하고 운영을 최적화하며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형 서점, 마트, 온라인 쇼핑몰, 식당,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 우리가 지갑을 여는 거의 모든 곳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마케팅 영역에서 일상화되고 있는 데이터 기반 전략의 가치가 선거 캠페인에서도 능률성과 효과성을 높일 것으로 일찍이 내다보았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후보가 도입한 데이터 기반 캠페인 전략입니다. 유권자 빅데이터를 구축해 타겟 메시지 전달, 풀뿌리 조직화, 온라인 선거기금 모금 등에 활용했습니다.
이후 2012년 재선 캠페인에서는 포괄적이면서도 더 정교화된 데이터 전략, '프로젝트 일각고래(Project Narwhal)'가 등장합니다. 데이터 분석 및 기술의 힘을 활용해 캠페인 전략을 최적화하고 유권자와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라 공개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만, 데이터 통합과 마이크로 타겟팅, 잠재적 지지자 동원, 스윙보터 식별 등 현대 정치에서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캠페인 모델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요?
재작년 11월에 한국의 정치 수준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됐습니다. 한국정책과학원이 의뢰한 조사인데요, 응답자의 41.0%가 한국 정치 수준이 '3류'라고 평가했습니다. '4류 이하'라는 응답 비율도 22.2%나 되었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이 조사결과를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선거 캠페인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선거 풍경을 떠올려 봅시다.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출퇴근 인사와 노인정, 상가, 식당, 술집, 시장, 마트 방문 등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학부모나 특정 직종 종사자 등과의 소규모 간담회도 연달아 엽니다. 주말에는 사람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 집중 유세를 벌입니다. 어디나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할지 어떻게 결정할까요? 역대 선거 결과나 유권자 분포 등의 통계를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감'으로 정합니다. 정보가 데이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두루뭉술하기도 하고, 우리 지역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캠페인의 결과 나는 내가 이 지역 유권자인지 아닌지, 자신의 지지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후보자에게 명함과 인사를 받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자의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거절하기 바쁩니다. 나와 상관없는 내용의 유세가 시끄럽기만 합니다.
우리는 매일 AI 시스템이 설계한 매장에서 내게 꼭 맞는 물건을 찾고 살 수 있는 스마트한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자 동시에 유권자이기도 한데, 선거 때만큼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시장은 물론이고, 행정의 영역에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기반행정(evidence-based administration)'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행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영미권에서 이념이나 신념, 검증되지 않은 의견과 판단에 기초한 정책 설계·집행의 실패와 문제점이 불거지며 도입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10일부터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대부분의 중앙·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 수요를 예측하거나 행정 만족도를 평가하는 데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치만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먹구구식에서 디지털로의 캠페인 방식 전환은 후보자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유권자를 위한 정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46대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Joe Biden)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2009~2017)을 지냈는데요, 2016년 2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과학 및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을 수용하는 선거 캠페인은 유권자에게 효과적으로 도달하고(effectively reach voters), 그들의 우려 사항을 해결하고(address their concerns), 현실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craft policies that are grounded in reality). 더 강력한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증거(evidence)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선거 캠페인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노이즈가 아니라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나를 위한 약속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관심에 정확하게 소구하고, 지역의 절실한 필요에 응답하며, 유권자가 원하는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이 좋은 정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감'으로 정하는 선거 캠페인, '스마트'해질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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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의 여의대교] 프레시안 칼럼,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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